붉은 악마, 앙골라 평가전 N석.


사커월드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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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장에서 제일 좋은 자리는 어딜까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은 사이드라인을 따라 중앙선부근에서 적당한 높이에 위치한 곳일 것입니다. 경기 전체를 볼 수도 있고, 선수를 가깝게 볼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들어서는 곳입니다.

골대 뒤쪽의 자리는 일반적으로 경기를 관람 하기에는 좋은 자리는 아닙니다. 전후반을 나누어서 한팀의 공격/수비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오프사이드 여부도 판단하기 쉽지 않을 뿐더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공방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쪽에 앉으면 맨날 듣는 소리가 '방금 어떻게 된거야?' 입니다.) 울트라스의 형태의 서포터들이 골대 뒤에 자리잡는 건 가족 단위의 소위 '일반팬'들의 관람권을 생각해서 그 쪽으로 위치하는 것입니다.

N석이 줄 수 있는 장점이라고는 아마 리딩에 맞춰 같이 응원하고 즐기는 재미 정도 일 것입니다. 정말로 골대 뒤 시점에서의 관람을 원한다면 S석도 동일한 관점을 제공해 줍니다. 현 시점에서 앙골라에서 수 천 명의 원정응원단이 동원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 정도로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은, 그냥 경기 보며 응원하며 놀자고 하는 게 아니 란 것일 겁니다. 다른 분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상을 당해서 노래할 기분이 아닌 겁니다. 그 자리를 ‘상가’로 만들려고 하니, 노래 하고 싶으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다른 자리에서 해 주셨으면 하는 것 입니다.

2. 경기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대게 '특별석'으로 지정되어서 선점되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하긴 한데, 보고 돌은 봐로는 무슨 공무원이나 공사 등의 조금 힘있다고 인식되는 사람들 (과 그들로부터 표를 얻은 사람들)이 차지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절대 자기 돈 내고 들어온 사람들은 아니고, 이따금씩 표가 알아서 날아오는 사람들 말입니다. 어쨌거나 '일반팬'은 그 자리에서 볼 수 없습니다.

작년에 수원에서 첼시 초청 경기가 있었습니다. 표는 일찌감치 매진이었고, 주차할 곳도 없이 빽빽했는데, 경기 시작 한 10분전까지, 다른 곳은 꼭대기 층까지 전부 사람이 들어섰는데 (일반적으로 표를 제일 비싸게 팔고 있는) E석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삼성 직원들에게 배정된 표였습니다. 회사에서 표를 뿌리지 않았으면 빅버드에 평생 한번 발을 들이지 않았을 만한 사람이 많았죠. 물론 인터파크나 그런 예매 사이트에 공지따윈 되지 않았습니다.

월드컵 때도 각 지방 자치단체 별로 "원정팀 응원단"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조직들이 만들어져서, 자리가 배정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표도 줬습니다. 그 나라 국기와 티셔츠, 그리고 모든 응원을 "대~ 한민국"박자에 맞춰서 "세~ 네갈" 이라던지 "코스~ 타리카" 라고 외쳐주던 눈물나게 고마운 우정의 상징이었습니다.

3. 소위 말하는 세련된 방법은, 정부 조직이나 대기업 같은 데가 쓰는 방법입니다. 경기장 관리 조례 만들어서, "경기장 내에 선동 구호나 불법 물질 반입 금지"라는 조항 만들고.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 고용해서 애들 끌어내라고 시키면 됩니다. 데스크에 전화 한 통 넣고 밤에 기자들하고 술 한번 먹자고 하면 됩니다. 한번 타이르듯이 이야기 해주면서, 성숙한 시민 의식과 관람 문화 어쩌고 사설 한번 써주면 됩니다. 절박한 사람들은 절박한 수단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비유로, 올림픽 때 성화가 봉송되는 길 옆쪽이라는 이유만으로 판자촌을 철거합니다. 절박해진 사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경찰이랑 육박전을 벌이느라 길이 막힙니다. 덕분에 길이 막히자 운전하던 사람들이 짜증을 냅니다. "촌스럽게 무슨 짓이야. 지들이 저런다고 누가 알아줘. 뭔가 하려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해야지."

데모를 계획하던 사람들이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서, "몇날 몇월 몇일 몇시에 어디서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데모를 하느라 길이 막힐겁니다." 라고 말해줍니다. 그러자 전화 받는 사람이 이렇게 대꾸합니다. "(니들 사정은 알 바 아니고) 나 그날 거기 가야 되는데, 그거 꼭 그날 거기서 해야겠소?"

4. 버스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노약자 석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차장에는 장애인 전용구간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주차장에 빈 자리가 딱 하나 있어서, 차를 대려고 하니까 관리 요원이 와서, “죄송합니다, 여기는 장애인 전용입니다. 근데 아직 페인트를 칠하지 못해서 표시가 안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 라고 말했을 때, 육두문자를 내지르면서 “XX야, 전용 표시도 없는 데 내가 알 게 뭐냐?” 하고 세워 버리는 사람이랑, 내가 비록 사기 당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관리 요원의 말을 믿어주고, 멀리 있는 다른 자리로 옮겨 주는 사람. 어느 쪽이 양식 있는 사람일까요?

5. N석에서 함성을 지르며 축구를 보고 싶어하시는 분이라면, 분명히 사석에서 ‘축구를 사랑한다.’ 내지는 ‘한국 축구를 사랑한다’ 라고 본인의 정체성을 밝히시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시면서, 붉은 악마를 원색적으로 비난 하시기 전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한 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한 번만 양보하고 다른 자리에서 보면 안 되겠습니까? 당장 만만한 붉은 악마라는 단체에게 화를 내는 거 보다, 이런 축구팬 간의 갈등이라는 비극을 뿌린 근원, 후안무치 SK와 GS에 대해 한 번만 생각해 주면 안되겠습니까?

결국 한 가지 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GS에 이어서 SK도 연고도시를 이전했다.” 이 명제를 얼마나 커다랗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남의 발바닥에 모기가 문 거만큼 아무 느낌이 없으시다면, 붉은 악마의 행동은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축구 엘리트 집단의 오만 불손한 도전입니다. 저 명제가 축구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자신의 삶의 기쁨에 대한 훼손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어쩌면 너무 늦은 행동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똑같이 나라를 잃고 폭탄을 터뜨려도, 윤봉길이 던지는 것과 팔레스타인 청년이 던지는 것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경기의 관람권, 두 시간의 즐거움에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아마도) 수십 시즌의 관람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수 년간 쏟아왔던 열정을 완전히 부정당하신 분들을 상기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축구장에서의 함성을 통해 흥을 얻고자 하셨던 분들에게, 여러분들이 누리시는 그 흥이 어디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한번만 생각해 달라고 부탁 드립니다.

6. 한 경기 퍼포먼스 어쩌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교묘한 카메라 각도는 통천과 걸개를 피해 갈 것이고, 마이크는 아웃될 것이며, 물건 반입은 거부당할지 모릅니다. 무관심한 ‘일반’ 팬들의 경기 집중 때문에 구호는 묻히고, 사람들은 지칠지도 모릅니다. 이 날을 지켜보는 저의 심정은 무겁기만 합니다.

젠장 뭐라도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by hongsup | 2006/02/23 19:47 | 만담과 생활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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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르실 at 2006/02/23 20:59
낄낄낄 제기럴.
Commented at 2006/02/23 23: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hongsup at 2006/02/24 06:58
축구 클럽은 '지역 사회'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개념이거든. 미국식 프랜차이즈로 회사가 지점 만든거랑은 차이가 크지.
국가대표 축구응원이 내쇼널리즘이랑 결합되서 왜곡된 면을 보이는게 있긴 한데, 클럽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흥이 '국가주의'로 부터 오는게 아니라, 소속감과 열정을 바치는 대상에 대한 일치감에서 온다는 것을 아는 거거든.
또 내쇼널리즘 == 파시즘은 아니니까.
Commented by hongsup at 2006/02/24 07:03
일단 팀을 만들었다고, 그건 지네께 아니라는 거지. 아이를 낳았는데 공부 못한다고 자기 애가 아니라고 내버릴수 없는거 처럼.
장사 안되니까 이전? 신자유주의가 모든 것의 당위성이 되서는 안되는 거잖아.
SK가 부천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니까. 치가 떨리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구단(들)에, 지지자들이 저절로 모여서 이만큼 키워 놓았더니 배신으로 응답하는 개념이탈 패륜구단.
Commented at 2006/02/24 09: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뭔소리.... at 2006/02/26 21:58
헐...앙골라전, 홈경기인데요...
Commented by hongsup at 2006/02/27 00:55
그래서요?
Commented by mookie at 2006/02/27 11:20
대강 분위기 파악은 했음. 맞나 확인 좀 합시다.
적어도 SK가 적정한 보상은 해야하는 상황이군. 기본도 하지 않은 채 "내 팀 내가 옮기는데 니들이 뭐3?"한 거군.
Commented by 인정만 at 2006/02/27 22:32
진심을 아는사람은 이런상황을 붉은악마를 바르게 이해하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sk에서공짜로 주는 티셔츠정도 받아들고 헤헤.. 하겠지요.. 슬픈현실이 안타갑네요.. 나쁜sk 기본이 없는 기업이 여기있었네요..나쁜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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