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The Longest Journey


2006년에 나온 후속작 (Dreamfall) 말고, 2000년에 나와서 전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바로 그 어드벤처 게임을 최근에서야 해볼 수 있었다. 퍼즐과 스토리가 주가 되는 "정통" 어드벤처 게임은 이제 더이상 찾아 볼수도 없기에, 과거의 영광을 추억할 수 있는 이 장르의 마지막 걸작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후속작 드림폴은 액션성이 추가되어 있다고 들었다.)

하긴 정통 어드벤처 게임이란 구태어 정형화된 개념을 굳이 만들건 또 뭐 있겠는가? 게임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생각해 보면 옛날 '어드벤처' 게임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도 액션으로 돌파해야 되는 부분이 있었고, 그 이전의 시에라 게임 (킹스 퀘스트?)에서도 타이밍 맞춰서 커맨드를 처리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었었고. 스타트렉 시리즈에서는 엔터프라이즈호로 윙커맨더 마냥 버드오브프레이를 격침시켜야 했으니... 정통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건, 기억에만 남아있는 박제에 불과 할지도 모르겠다.  총이나 카메라를 들고 좀비나 장롱 귀신과 싸워 나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이템을 찾아서 퍼즐을 풀어가야 하니 과거 '어드벤처'의 장르적 특징은 진화하여 남아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액션에 자신 없는 액션치들에겐 게임 오버가 없던 옛날 그 시절이 그립긴 하지만...

어쨌거나 본 게임 The Longest Journey (이하 TLJ)는 이 게임의 높은 완성도 때문에 발매 당시 부터 전 세계를, 적어도 이 장르의 팬들을 뜨겁게 달궜었다고 한다. 이런 게임을 이제 와서야 플레이 해본 나는 또 뭔지.

TLJ의 매력은 1)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중심 이야기. 2) 개성적인 주인공들과 풍부한 양의 대화, 그리고 위트. 3) 당시로서는 빼어난 그래픽, 4) 무리하거나 짜증나지 않는 수준의 퍼즐. 정도로 압축될 수 있었다.

6년이나 지난 게임의 스토리 라인을 이야기 한다고 스포일러라고 할 수는 없겠지.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빨려들어가는 듯한 중심 이야기이다. 재미난 책을 읽을때 빨리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페이지를 서둘러 넘기면서도, 남아 있는 페이지의 양이 점점 적어지는 것이 안타까운, 바로 그 느낌을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에게 선물해 준다.

주인공 April Ryan의 몽환적인 꿈(용과 세계의 종말이 나오는)에서 시작한 이 게임은, 주인공의 현실 (2300년경 어느 도시의 중하층민 거주구역, 하숙집 단칸방에 머무르는 미술대학 학생)에서 그녀에게 다가오는 신비로운 사건들을 통해 긴장의 수위를 높여간다. 정체모를 사나이 Cortez와의 만남 뒤에 갑자기, 그녀의 꿈이 현실과 중첩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세계의 벽을 넘어가게 된다.

이 게임이 가지고 있는 매혹적인 세계관 (사실 아주 새롭다고 볼 수도 없지만)은 우리 우주는 두 개로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과학과 논리가 지배하는 이곳 세계 Stark와 마법의 원리가 남아있는 저쪽 세계 Arcadia는 본래 하나의 세계였으나, 인간들의 무모한 힘의 사용이 우주 전체의 위험을 가져오게 되자, 고대 종족 (Ancient Ones)인 Draic-Kin 혹은 드래건들이 뜻있는 인간들과 함께 세상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이 두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이 조절자 Guardian이라는 선택된 사람에게 맡겨지며, 한번 가디언으로 뽑히게 되면 1000년동안 탑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두 세계의 균형을 강제로 무너뜨리려고 하는 세력(Vanguard)이 있었으니, 이들은 아카디아에서는 이교 교단으로, 스타크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형태로 그 세력을 모아왔다. 이들은 가디언이 새로 뽑히는 것을 방해하여, 현 가디언은 200년이상이나 교체되지 못하다가, 결국 후계자 없이 탑을 비우게 된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주인공 April Ryan은 이런 뒷 이야기들과 세계의 균형을 위해 자신이 뽑히게 되었음을 알게된다. 양쪽 세상을 오고 갈수 있는 능력(Shifter)을 지닌 자로서, 에이프릴은 세계를 오고가며, 탑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고 세상의 균형을 가져오려고 한다. 자기 다이어리에다가 10대 여자아이들의 말투로 온갖 투정과 고민을 적어가면서.



어드벤처 게임의 묘미는 결국 대화일수 밖에 없는데, (아이템 과 사물 밖에 없다면 얼마나 공허하겠는가) 이 게임은 방대한 양의 대화를 지원하면서도, 중간중간 맛갈나는 대화들이 자주 등장해서 게임의 재미를 돋구워 준다. 캐릭터들이 사용하는 말투와 어휘도 각각의 개성을 풍부하게 해준다. 더 좋은 건 그냥 넘겨 버린 대사를 나중에 dialog 기록집에서 다시 읽어 볼 수 있다는 사실. [물론 그보다는 에이프릴이 자기 다이어리에 중간중간 요약본, 즉 '현상황이 어떻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한다. 아이고 내팔자야! 가 백만배쯤 도움이 되지만] 개발진은 스웨덴(노르웨이?)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영어 버전에 어색한게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할 정도로 잘 번역 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어 패치 버전은 해보지 못했다.

옛날 루카스 게임 만큼의 위트는 아니지만, 졸지에 1000년짜리 최저 임금 미만 강제 노역에 시달릴 운명을 선물받은 아가씨 치고는, 우습거나 냉소적인 대사들을 읊을 수가 있어서 게임하는 데 잔 재미를 더해 준다. 개인적으로는 연금술사랑 1:1 대결할때 받아쓰기 하는게 기억에 오래 남았음. bureaucracy (관료주의)


그래픽은 2000년엔 좋았겠지만, 지금은 패스.


퍼즐은 약간 아쉬움이 남는데 어려운 퍼즐이랑 쉬운 퍼즐이랑 발란스가 안맞는 경향이 없었다. (게임 만들때도 가디언이 없었나 보다.)  초기 챕터들과 중후반부 챕터들 사이에는 챕터의 길이와 퍼즐의 난이도의 차이가 너무 크다. 이를테면 처음 챕터는 해야할 일도 많고, 캐릭터도 많이 등장하며 자유도도 높지만 후반부 몇몇 챕터는 단선적인 구성에 뻔한 아이템으로 뻔한 동작을 해야 했다.

어떤 퍼즐은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가 너무 적거나 (크리스탈 위치 맞추기), 아이템 사용이 좀 비 논리적이거나 (지하철 선로에서 낚시하기) 하는게 있었다. 물론 나같은 직장인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공략집을 참조했지만.
직접 풀어서 기억에 남는 퍼즐은 무선 전화 네트워크 만들어서 거인 깨우기, 연금술사의 방에서 약재 섞기, 밸브 잠그기 같은 것들이다.


스토리에서도 사실 아쉬운 점이 있는데, 어려운 단어 때문에 내가 못알아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스토리의 비약이랄까 설명이 부족하게 넘어가는 부분들이 좀 있었다.  먼저 주인공 April의 정체와 그녀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장 의심스럽다. 마지막에 뜬금없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아버지는 도데체 뭐였는지. 양아버지가 그녀를 왜, 어떻게 학대했다는 것인지? 사랑하던 딸이 갑자기 병이 나아서 그녀를 미워하게 되었다? 근데 마지막에 아버지는 나를 미워하지 않아, 아버지는 나를 사랑해라고 외치자 상황 반전? 도데체가 말이 안되잖아!

그 밖에 에이프릴의 친구들이 후반부 스토리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이나, 아카디아에서 겪는 몇가지 퀘스트들이 좀 뜬금 없었던 것들은 전체 구성의 통일성에서 마이너스 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은 이 게임이 받아온 찬사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몰입감을 선물해 주었다.  후속작 Dreamfall을 시도해 볼지는 아직 미지수긴 하지만...


@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음의 사이트를 참조하시길. : http://dumbtm.com/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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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sup | 2007/02/10 22:27 | 창작과 비평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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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하느니삽 at 2007/02/12 20:23
2000년도에 나온 겜을 이제서야 하다니! 근데 2006년에 후속작이 나왔는지도 몰랐네. 요즘엔 어드벤처겜이 안나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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