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10일
늦은 리뷰: 대전 v 수원 (2007년 3월 3일, 수원 W)
* 징크스의 시작과 끝 2003년 6월 대전 생활을 마감 하고, 수원으로 터전을 옮긴 다음, 빅 버드에서 처음으로 봤던 경기
에서 대전은 수원에 2-1 승리를 거두었다. (이경기는 징크스의 2번째 경기였다. 첫번째 경기는 그 해
5월 4일 대전 홈경기 2-0 완승이었다. 이 날은 경기장을 찾지 못했다.)
수원생활 도중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적어도 1년에 한번 대전이 수원에 올라왔을 때 만큼은
경기장에서 함께 하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그 1경기가 평일 오후 경기가 되어버리면 직장에서 빠져
나오기에 여간 민망한게 아니었다. 나에게 축구는 맨날 하는 경기가 아니라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행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같은 팀끼리 여러번 붙는 다른 프로 스포츠가 부러울지경이다.
그럼에도 매번 경기장을 찾을때 마다, 승리 혹은 그에 준하는 안도감을 가지고 경기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젠간 그날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올해의 첫경기에서 그 작은 기록도
끝을 맺었다. 개인적으로 다시 수원을 떠날 때가 되었는데, 이 연속 무패 기록도 같이 깨어져 버렸다.
영미 속담에 모든 좋은 것엔 끝이 있다고 했다. 기록이 깨어진건 아쉽지만, 새로운 도전을 다시 시작
하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수원이 대전에게 이기지 못하는게 징크스가 아니라 '당연한'일로 만들라
는 그런 의미라고 생각한다.
* 개막전 경기 분위기
주중의 화창한 날씨에 들떠서 돌 지난 딸내미를 데리고 가려 했으나, 경기 전날부터 찌뿌린 하늘과 흩
날리는 빗방울에 혼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만약 가족을 데리고 갔으면 비맞으면서 고함을 지르지는
못했을 터이니 잘 된 일인지도.
내심 비가 오길래, 썰렁한 운동장을 예상했건만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은 아주대 근처부터 차가 줄을
늘어섰고, 경기장 바깥은 이미 주차장이었다. (차감독의 예상밖의 꽃미남 수집 성향의 덕도 조금은
있으려나?) 조금 떨어진 중소기업진흥청에 주차해 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동안, 불현듯 미디어에서
읽었던 우라와와 성남의 개막전을 비교해 놓은 기사가 생각나서 얼마나 분통이 터졌는지 몰랐다.
비속의 수원은 그보다 훨씬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S석에는 여느때 마냥 대전의 지지자들이 모여 있었다. 대전에서 원정오신 분들이 많았지만, 의외로
전국 방방곡곡 숨은 열성 팬을 많이 보유한 구단 답게 수원 근처에서 오신 분들도 상당수 있었다.
특히 전반 중반이후 빗줄기가 굵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자리를 지켜주던 사람들, 하프타임때 비를 피
하러 들어갔다가도 후반전이 되자 다시 빗속으로 자리하던 (우비도 없이!!!) 사람들의 젖은 머리카락
하나하나에서 이 스포츠의 팬이 되는 기쁨이 우러나왔다.
1년에 한번씩 서포팅을 하다보면 문제가, 10대 취향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모르는 것 이상으로,
우리팀 응원가 - 특히 신곡 - 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작년에도 많이 낯설어 했고, 이번에도
뭔가 새로운 곡들이 좀 들어갔는데 어려웠다.
경기 초반 분위기가 달아오를때는 정말 뜨거웠고, 전반전을 잘 버텼을때는 뭔가 비장한 분위기가 감
돌았다. 특히 선수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미드에서 상대를 적극적으로 압박하고 빠른 역습으로 이어
가면서 뭔가 한건 해볼듯한 분위기를 보여주자 다들 기대하는 눈치였고, 우승제의 골은 그 정점에서
터져나왔고 S석은 축제 분위기였다. 골 넣고도 한참 동안.
그러나 숨겨진 에이스 스트라이커 마토의 프리킥골이 들어갔을때 S석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비속에서 힘을 다해주는 선수들을 격려했으나, 마지막 2,3분을 남겨두고. 안효연의 머리에
공이 맞고 포물선을 그리는 그 몇초동안, 흡사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간이 멈춰진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TV로 다시 봤을때는 얼마나 짧은 순간이던지). 공은 공중에서 한참을 떠
있었고, 최은성은 정지자세로 하늘에 떠 있었고 그리고 일순간 연체된 비디오 반납되듯 한꺼번에
공이 움직여 그물을 흔들었다.
S석은 무거웠다. 다들 비에 쫄닥 젖어서 옷도 무거웠고, 안경낀 사람들 눈에는 김이 가득했고, 머리
카락에서는 물이 떨어졌다. 남은 시간은 2분. 진작에 선수들의 몸이 무거워 진걸 왜 관중들이라고
모르겠느냐. 다들 허탈한 마음에 넋이 나갔다. 아니 내가 왜 내 돈 내가면서 지금 여기서 이짓거리
하고 있는 걸까... 마지막 공세에 기대도 걸어 보지만 그렇게도 안가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사실 선수들의 투지와 팀의 기량에 높은 점수를 줄만한 경기였음에도 징크스를 이쪽에서 의식하고
있어서였는지 역전패의 충격은 정말 엄청났다. 서포터들도 다들 기운이 빠져서 인사하러온 선수들
에게 제대로 노래도 못불러 줬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오늘 같은 경기를 한 선수들에겐 'We love
대전'을 불러줘 마땅했다.)
개막전 패배는 아쉽지만 내용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도 많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패배
는 2003년 성남에서 봤던 개막전 (0-1 패)을 연상시켰다. 그 경기도 아쉽게 졌는데 결과적으로 그해
성남은 리그를 초토화 시켰고, 대전은 가장 좋은 정규리그 성적을 이끌며 돌풍의 진원이 되었다. 올
해도 그 해처럼 되지 않을까? (그럼 수원 우승? =__=)
* 경기 내용
대전의 전략은 미들에서 스위칭-압박을 통한 상대 공격라인의 무력화, 역습시 롱볼을 통한 상대
뒷공간 침투라는 전략이었다. 대전이 수비적인 전술을 취했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선수들을 두겹
으로 PA 앞에 위치시키고 상대 선수를 태클거는게 아니라, 미들에서 강하게 맞부딪히고 틈만 보
였다 하면 공을 차고 앞으로 무섭게 달려나갔기 때문에 경기는 시종 긴장감 속에서 진행 되었다.
대전은 민영기-이성운-강정훈의 미드필더들이 자리를 바꾸어 가며 상대를 압박했을 뿐 아니라,
양쪽 사이드백 (주승진, 김창수), 중앙수비수 (최윤열), 그리고 중앙 공격수 (타이손, 데닐슨)
들 또한 미드필드 전투에 가담해 주었다. 특히 상대가 패스를 통해 압박을 벗기면 그 빈자리를
위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메워주는 것이 최윤열 감독이 동계훈련을 통해 이런걸 만들어 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상대 수원의 화려한 선수 구성이 이런 조직적인 압박을 얄밉게도 견뎌내었다. 공과 공간을
몰아내려고 대전 선수들이 달려들고 안정환-김남일-이관우-송종국-나드손-백지훈... 이런 국대급
선수들이 서로 패스를 주고 받으며 공간을 벌려나갔다. 그 팽팽한 긴장감이란.
공을 빼았으면 공간을 노리는 빠른 패스를 통해 측면을 공격했는데 결국 우승제가 득점을 만들어
냈다. 그 전에도 좋은 찬스가 있었지만 좋은 찬스 2,3쯤은 매경기 양팀 모두 놓치는 거니까 언급
할 필요는 없다. 득점 장면에서는 동료 선수 쇄도가 늦는다 싶었는데 바로 슈팅하는 과감성이 돋
보였다.
이후 좋은 경기를 보이는가 싶더니 결국 수중전의 부담에다가, 미들 싸움의 후유증으로 미드필드
의 기동력이 눈에 띄게 느려져갔다. 어찌어찌 버티나 하다가 결국 마토와 안효연에게 골을 내어주
고 만다.
* 앞으로는
전체적인 공격을 보자면, 미들싸움에 가담하다보니 공격시 숫자가 적어지는건 어쩔 수 없고, 의미
있는 찬스의 숫자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타이슨이나 데닐손이 키핑을 조금 해주긴 하지만 위압감
은 부족하고. 공격을 마무리지을 패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미들에서 후반들어서 힘이 떨어지는 현상. 베테랑들이 중심이 되는 운영이고 선수단의 숫
자가 모자라는 이상 올해에도 어쩔 수 없을 텐데, 이 풀리지 않는 숙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내 생각엔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선수들이 경험이 없고
기량도 부족한 면이 많지만, 경험이고 기량이고 가만히 경기 구경만 해서는 절대로 늘지 않는다.
GK만 해도 최은성 선수가 좋은 경기를 많이 하지만, 이젠 예전과 같은 슈퍼 세이브를 별로 보여
예전만큼 많이 보여 주지 못하는것 같다. (옛날엔 최은성 콜을 자제해야 할 정도였지만, 내가 본
경기나 가끔 본 중계에서는 콜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양동원 선수에게도 리그 출전 기회를 줘야
줘야 한다. 같은 올림픽 팀의 정성룡 선수의 포항에서의 입지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2003년 성남에서 살림꾼 역할 하던 이성운 선수도 반갑고, 배모 선수 주고 받아온 조재민, 황규환
두 선수에게도 기대가 간다. (다만 이성운, 조재민 선수는 나이가 작진 않다는거, 대전이니까 젋
은 축이지...)
또 공격수를 한 명 정도 임대해 올 수 있으면 좋겠다. 2003년 울산에서 알리송 빌려와서 재미본거
처럼, 남는 용병 혹은 남는 국내 선수를 하나 데리고 왔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다.
나의 위시 리스트:
수원 (남궁웅, 신영록, 정윤성)
북팀 (박요셉, 심우연)
전북 (박정환)
부산 (전우근)
* 마지막으로
98년도에 처음 팀이 창단되는걸 본지 벌써 10년이 지났나 보다. 월드컵 유치하려고 당시 시장이던
홍선기 씨가 동네 회사들 이끌고 억지로 쇼를 한다고도 생각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그만 이 팀에
정이 들고야 말았다.
지금도 원년과 초기 멤버들 - 이호성, 정성천, 서동원, 신진원, 김정수, 홍광철, 유동우, 콜리
이런 선수들이 자주 생각난다.
10년이 더 지나도 아마 이팀은 내팀일 것이다. 내 딸은 그렇게 생각 안하겠지만.
# by | 2007/03/10 01:32 | 창작과 비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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