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5월 26일
총균쇠
16세기. 쇠로 만들어진 무기와 말, 총 그리고 치명적인 천연두균을 보유한 일련의 유럽인들이 태평양을 건너가 남/북 아프리카의 제국을 정복한다. 이것은 사실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총, 병균, 그리고 강철을 지닌 문명은 그렇지 못한 문명을 차례로 정복하였다. 문명 불균형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러한 발전된 무기, 질병, 강력한 정치 체계, 운송수단을 지니고 있느냐의 여부였다. 이 책의 제목 총(Gun), 균(Germ), 쇠(Steel)은 이런것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렇지만 이것은 다시금 하나의 질문을 잉태할 수 밖에 없다.
왜 어떤 문명은 그런 것들을 발전 시켰으나 다른 문명은 그러하지 못하였는가? 왜 말을 타고 총을 든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멸망시켰지, 들소를 탄 아메리카인들이 태평양을 건너와서 유럽을 멸망시키지 못하였는가? 혹시 그것은 어떠한 인종적인 요소, 이를테면 백인은 다른 민족보다 월등하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많은 백인들이 겉으로는 아니지만 속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 명제에 대해, 저자는 여러가지 인류 역사학을 통해 통렬하고 명쾌한 분석을 제시해준다.
사실 우리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다. 저 총/균/쇠는 어느날 갑자기 특출난 한명의 천재에 의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천재가 속한 사회가 겪어온 역사가 뒷받침을 해주지 않는 이상, 그 천재는 자신의 재능을 다른 쪽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류가 생겨난 이후, 인류가 지구에 퍼져나가기 시작한 이후 만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면서 쌓아온 역사의 차이가 발현된 결과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좋은 부동산을 가진 민족은 "먼저 시작"할 수 있었고 그 차이가 마지막의 문명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인류의 문명이 발현할 수 있었던 지역은 그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가 오는 기후만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수 많은 온대성 기후의 많은 지역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물화 할 수 있을 만한 야생 곡류가 있었느냐 하는 점을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이를테면 벼/밀/조/수수/기장과 같이 농작할 수 있으며 영양가가 풍부한 작물들의 야생 조상이 자라던 지역은 농경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지역의 주민들은 수많은 시도를 해보았으나 끝내 실패하고 수렵 채집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본인이 수렵 채집하는 사람들과 지낸 이야기를 하면서, 그 원주민들은 주변의 모든 동식물들을 전부 다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준다. 결국 현대에 오기 까지 수렵 채집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민족들은 그 민족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기를 작물이 없었던 것이다. 또하나의 증거는 파푸아 뉴기지의 고지대 지방에 유럽인들에 의해 고구마라는 작물 이 들어오고 나서, (유럽인들이 식민지 정부를 채 세우거나 하기 전에) 그 지역의 농작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인구 또한 증가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또 중요하게 이야기 되었던 것은 가축의 존재 여부이다. 안정적인 단백질 공급원이 되고, 전쟁에서의 탈것으로 쓸 수 있으며, 경작이나 건축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가축 또한 문명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가축 또한 마찬가지로 가축화 할 수 있는 대형 초식 포유류가 근처에 있었는가의 여부가 큰 변수가 되었다. 이를테면 대형포유류의 천국인 아프리카는, 기대와는 다르게, 가축화 할 수 있을만한 포유류가 존재하지 않았다. 기린이나 코뿔소, 가젤과 같은 종류의 생물들은 동물학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라고 할지라도 가축으로 만들지 못하는 생물들이다.
가축의 역할에 대한 또하나의 재미있는 설명은,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점령할때 혹은 이후 유럽인들이 추가적으로 다른 세계를 점령할때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전염병'의 대부분이 가축의 바이러스에서 진화해 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천연두가 '우두'와 근원이 같다는 것을 우리는 종두법에 의해 알고 있다. (AIDS의 원인 원숭이, 조류독감의 닭, 그리고 사스의 고양이까지도..)
농작물화 할 수 있는 식물, 그리고 가축화 할 수 있는 동물의 존재 여부가 문명의 시작을 결정지었다. 일단 농작물과 가축이 있으면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인구의 증가는 정치 조직, 경제 조직, 문명의 도구, 문화와 같은 것들을 발전시키게 된다. (혹은 그러하지 못하면 이웃에게 멸망한다.)
또 한가지의 중요한 요소는 문명이 전파 할 수 있는가 하는 요소였다. 이를테면 지금의 중동,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된 곡물은 바로 유럽에 이르기 까지 전파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북아프리카는 기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아프리카의 남쪽보다는 지중해 연안과 같았다. 북아프리카의 작물은 결코 사하라를 넘어가지도 못했고, 그렇다 하더라도 열대의 기후에서는 자라지 못했다. 항해술이 발전해서 적도를 넘어 남 아프리카의 온대성 기후에까지 활동영역이 넓어질 때 까지, 육로로는 결코 이 작물들이 전파되지 않았던 것이다.
문명 전파의 방향이 동서 방향 (같은 위도)인 편이 남북방향 (다른 위도)인 것에 비해 훨씬 유리했다는 것이다. 같은 예로 남아메리카의 가축(라마)와 북아메리카의 작물은 결코 만나지 못했다.
이 모든 요소를 고루 가지고 있던 유라시아가 지구를 제패한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유럽과 중동을 비교해 보면 중동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비옥한 초승달 지대였으나, 기후가 변하면서 이제는 건조한 사막지대로 인구가 밀집되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유럽과 아시아를 비교해 보면 아시아(중국)은 한참동안이나 유럽에 비해 앞서 있던 지역이었음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통일된 중국의 왕조는 오히려 문명 발달을 저해했음이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또한 유럽과 아시아의 지리적인 차이가 일조했는데 중국은 비교적 평탄한 지역으로 강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러한 왕조가 들어 설 요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작가는 단순히 내가 서술한 것 처럼 그럴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적인 생물확, 언어학, 문화학과 같은 학문적인 접근들 또 오세아니아 폴리네시아 일대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수렵 채집 민족들과의 생활에서의 관찰을 가지고 매우 설득력있는 거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큰틀에서 보았을때 인류의 역사는 어떠한 보편성을 띄게되고, 그러한 보편성으로 현재의 상황을 통찰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저자 제라드 다이아몬드가 가르쳐 주기전에, 나는 그리고 아마 많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훨씬 더 즐거운 선생님을 만났었을 것이다. 바로 '시드 마이어'이다. 그의 게임 문명(Civilization)을 즐겨본 사람이라면 지리적인 요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인구 증가의 원인이 무엇이고 인구 증가가 문명 발전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고립되어 있는 문명은 어떤 한계를 가지고 발전히 힘든지 등등.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글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다. 글에 한글 간판의 삽화도 들어 있다. 음소를 기호화 하여 음절 단위로 블록으로 묵는다는 창의적인 원칙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저자의 책속에서도 문자에 대한 설명의 챕터에서 이러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으며, 문명 전파에 있어서 세부적인 내용의 전파가 아닌, 아이디어 전파후의 재창조의 예로서 들어주고 있다. 이를테면 서양문명에서 사용되고 있는 알파벳은 단 한번 발명된 것이 새로 발명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전파된 것이다.
인류학 책을 읽다보면 인류의 거대한 역사의 흐름앞에서 과연 개인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될 때가 있다. 역사에 있어서는 가끔 '위인'이라는 존재들이 역사의 흐름에 족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인류학의 관점에서는 그러한 것들도 정말 아무것도 아닌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개인의 지력이 아니었다면 인류 전체의 지력 또한 없었을 것이다. 결국 각각의 개인은 소중하고 또 '모든' 개인이 소중하다는 진실을 인류학 책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는다.
# by | 2004/05/26 20:36 | 창작과 비평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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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총균쇠
= 총, 균, 쇠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Guns, Germs, and Steel = ISBN:8970127240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은이), 김진준 (옮긴이) *문학사상사 ---- 폴리네시아인은 왜 19세기까지 문명화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왜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은 유라시아대륙의 사람들에게 지배를 받게 되었을까? 이러한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