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5월 26일
트로이
그리스에서 문자로 기록된 역사가 시작되기 전. 그리스 도시국가의 연합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소아시아의 관문 트로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의 발단이 된 사건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의 부인인 헬레네를 파리스가 빼았아갔기 때문. 그리스의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는 전투중 아가멤논과의 불화로 (전리품으로 얻은 여자를 빼앗김) 출격을 거부하던 사이, 그가 '사랑'하던 자가 자기 갑옷을 입고 출격했다가 트로이 최고의 영웅 헥토르에게 죽음을 당한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성벽앞에서 헥토르와 1:1 결투를 해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신을 전차에 끌고 욕보인다. 트로이의 노왕 프레아모스는 그리스인의 진지로 찾아와서 아킬레우스에게서 아들의 시신을 되찾아간다. 아킬레우스는 파리스의 화살에 발뒷꿈치 (아킬레스건)를 맞고 죽는다. 굳건히 지켜지던 트로이의 성문이었으나, 그리스의 지장 오디세우스는 계략으로 목마를 만든다. 이 목마를 끌어들이자 밤중에 그 안에서는 군인들이 나와서 성문을 열자 트로이는 불타서 멸망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트로이 전쟁은 소아시아쪽으로 팽창하는 그리스 세력이 해안 교통의 요지였던 트로이를 상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 이 모든 내용이 전부 들어 있는데, 왜 내가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과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온 것 같은가.... 영화 전체의 줄거리를 통과해 흐르던 할리우드식 버무림은 고전을 누더기로 만들뿐 아니라 코메디로 만들어 버린것 같았다.
아킬레우스가 목마속에서 뛰쳐나와서 불타는 트로이성내를 뛰어다니면서 어떤 여자 (아가멤논이 빼앗아가서 불화의 원인이된 여자)를 찾아다니고 있다. 이만하면 영화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 수 있겠는가? 트로이는 1달도 안되서 함락되었다. 영화속의 시간으로 한 15일만에. 그리고 그중 12일은 휴전기간으로, 그리스인들은 목마를 만들었다. 아가멤논은 불타는 트로이에서 그 여자에게 칼에 찔려 죽고, 메넬라우스는 파리스랑 1:1 대결을 하다가 헥토르에게 죽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 곁에서 흑흑 울다가 곧 따라 가겠네 형제, 이딴 말이나 해 대고...
불핀치를 읽은 지 오래된 분들을 위해 몇 가지 '공식적인 버전'의 내용을 덧붙임. 나도 생각이 잘 안나서 네이버 지식인을 참조했음. 아킬레우스는 파리스의 화살에 죽긴 하지만 물론 트로이가 함락되기 한참 전에 일임. 트로이 전쟁은 10년간 계속되었고, 10년이 지난후 오디세우스의 목마작전이 일어남. 메넬라오스는 안죽음. 나중에 헬레네랑 같이 스파르타로 돌아감. 전설에 따르면 둘은 극락(엑셀시온)에 갔다고 함. 아가멤논도 안 죽고 미케네로 돌아가는데, 거기서 애인이 생긴 자기부인에게 배신당해 살해당함. (이 사건도 유명한 그리스 연극임.)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죽은건 '친구'인 파트로클로스 였는데 (아마도 물론 동성애 친구) 출장거부 하고 있던 아킬레우스에게 오디세우스가 찾아갔을때, 아킬레우스 본인이 그렇게 할것을 허락했었음. 영화속에서는 사촌인 파트로클로스가 무단으로 갑옷입고 출격한 것으로 나옴.
아킬레우스가 죽음에 관련된 여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짬뽕된건데, 아가멤논이 빼았아간 여자는 트로이의 동맹군의 무슨 왕의 부인이었음. 전혀 관계 없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장례식에서 본 트로이의 공주 폴릭세네에게 반해서 아폴로 신전에서 결혼 맹세를 하려고 했는데, 거기서 파리스의 화살에 맞음.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헥토르가 빼았아 입었는데, 헥토르의 사후 아킬레우스에게로 갔다가, 아킬레우스가 죽고나서 쟁탈전이 벌어짐. 영화에 잠시 나왔다 죽은 아이아스 (영어로는 아약스. ajax라는 축구팀으로 유명한 네델란드 도시의 이름의 기원인)와 오디세우스가 최종 후보자였는데 오디세우스가 이기게 되자, 아이아스는 미쳐서 양떼를 몰살시키고 죽었다고 함.
파리스는 전쟁중에 화살을 맞아 죽음. 헬레네는 사실 파리스 따라간걸 후회했다고도 전해지고, 오디세우스가 신상을 훔치러 트로이에 잠입했던 적도 있는데 그때 알아보고도 못 본척 했다고도 함. (즉 파리스에게 맘이 없었단 이야기)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기를 원하지 않아서 미친척하고 소금밭에 쟁기질을 했음.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쟁기앞에 놓자 쟁기를 피했으므로 들통이 남.아킬레스는 어디 궁전의 시녀들사이에 여장을 하고 숨었는데, 이들앞에 보물을 쏟아놓자 다들 보석만 보는데 혼자 무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오디세우스에게 걸렸다고함.
그 밖에 신화적인 요소들을 빼고라도, 아이네이아스라던지, 카산드라라던지, 라오콘이라던지 하는 수많은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들은 전부 빠져있다. 사실 잘못 삽입되어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신화에 대해서 한마디. 감독은 '무신론'적인 관점을 숨기지 않고 들어낸다. 신에대한 경멸같은 것이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서 게속해서 드러난다. 트로이 전쟁에서 신화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영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도 정도는 있는것 같았다. 아킬레우스의 '불사신'신화에대한 부정으로 영화를 시작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폴로신전을 점령하고 신상의 목을 베는 아킬레우스의 에피소드라던지, 그밖의 무신론적인 대사들, 또 신관들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헥토르의 이야기나 순풍에 대한 헥토르의 커멘트 등등에서 그 이상의 무신론적인 관점이 자주 비추어진다.
신화의 이야기에서 신을 제거하였으니 이야기의 정수를 이미 날려버린 셈인데,거기에 무신론을 더하여 신화속에 살고 있던 그리스 사람들을 두 번 죽여버렸다. 그러고 훌륭한 인간의 이야기를 그렸으면 모를까, 귀여니소설 같은 걸 만들어버렸다.
사실 유럽에서의 분위기는, 그리고 식자들의 분위기는 이런 그리스 고전들의 내용에 대해 잘못 알고 있으면 완전 '졸라 교양없는 XX'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그리스 신화의 내용으로 즉석 연극을 하는 내용이 있는 소설들도 많이 보았던것 같고. 그런데 과연 미국의 대중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못 각색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고나 할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네이버 지식인엔 앞으로 얼마나 잘못된 답글들이 달릴런지....
영화의 가치는 브레드 피트와 올란드 블룸과 에릭바나의 근육 뿐일지도 모르겠다.아놀드 슈월츠제네거의 근육보다야 훨씬 보기좋으니까. 그러니 이 영화는 사실 WWE 부커진이 각본을 쓴 PPV였을지도!
전쟁장면은 실소를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좀 있었다. 그 정점은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오디세우스가 헥토르에게 "오늘은 그만 하지."라고 말하고 전투를 그만 두는 장면. 분명히 퇴각하는 그리스인을 몰살시키려고 급습해온 트로이군이었는데!! 그말 한마디에 "어, 그래."하고 난전을 벌이던 부대를 퇴각시킨다.
그리스식 무장과 복식이 정확했는지 구별해낼 눈이 나에겐 없지만, 한 번정도는 다닥다닥 붙어 싸웠던 그리스 장갑 보병 전투가 재현된다. 내생각엔 좀더 붙어서 싸워야 팔랑크스 전투가 제대로 구현된게 아닌가 싶다. 멋은 없겠지만. 병사들은 서로간의 어깨를 바싹붙이고 옆사람의 방패에 의지하였고, 죽어도 쓰러질 공간이 없다고 몽고메리 장군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한숨이 나오는건 어쩔수 없는 영화였다. 하지만 아낙들에게는 인기가 있으니...

@ 그리고 헬레나로 나온 배우는 화장품 모델 출신으로 백화점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by | 2004/05/26 21:53 | 창작과 비평 | 트랙백(2)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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