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2004.6.02. 상암. 터키전 TV 감상.

전반에 압도적인 농락 당함 모드. 최근들어 자주 볼수 있는 모드로 무언가 되는게 하나도 없는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이 뛰는거 같은데 공을 잡으면 주위에 선수가 하나도 없고, 공이 튕겨도 우리편 근처로는 안되고, 우리편이 세명 네명 있는데 그 사이로 공이 지나가서 상대방에게 연결되고...

이런식으로 팀전체가 흔들리는 듯 하면 어디가 문제의 출발인지를 감독은 냉정하게 판단해서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안풀리기 시작하면 하나도 되는게 없고, 불운 몇개가 잘 진행되던 경기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은 다음에 팀 전체가 침몰 할 수도 있다. 우선 4-4-2 에 중앙 미들 이을용 + 김남일은 여러번 시도해 보았지만 그 때 마다 실패로 끝났다. 또 다시 이 카드를 빼어들고 나온 박성화감독의 고집에 놀랍다고 해야하나. 예상대로 미들을 완전히 터키에게 내어주며 고전에 고전을 거듭한다.

이 조합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이 두 미드필드 선수가 활동량과 템포가 빠르지 못하다는데 있다. 거기에 박성화 감독은 양쪽 풀백의 오버래핑을 극도로 자제시키고 있으며, 반대로 윙들은 윙포워드 이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비중이 높다. 결국 미드필드에서 이을용과 김남일은 고립되어 작심하고 나온 상대의 압박에 고전할 수 밖에 없다. 이을용은 지단이 아니고 김남일은비에이라가 아니다. 저정도가 저 선수들이 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인 것이다.

결국 공격의 방향은 뻔해지고, 선수들은 몰리게 되고 압박들어오는 상대방에 의해 쫒기는 상태에서의 패스는 상대방에게 헌납된다. 이렇게 되면 공격수들도 포지션을 잡을 수가 없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앞을 지나가는 공을 뻔히 바라 보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용수 해설자도 강조했지만, 뛰는 양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났다. 축구라는 운동은 기본적으로 팀전체가 많이 뛰게 되면 팀의 위력이 두배/세배가되고, 체력의 소모도 그렇게 많지 않게 된다. 친선경기이고 리그 중간이라 부상을 우려했다손 치더라도 그토록 소심한 운영과 몸싸움의 부재는 용서가 안될 정도였다. 이 차이는 결국 전반 10분 이후 내내 끌려다니는 답답한 경기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박성화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점중 하나는 무언가 안될때 바꾸는 능력이뛰어나다는 점이다. (낮게 평가하는 점은 그러면서도 고집이 진짜 쎄서 안되는 패턴을 고집하고, 발전적인 공격전술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후반에 3-5-2로 가면서 가운데에 선수들을 더 배치시키면서 경기가 살아났다. 특히 올대 선수들이 팀의 중심이 되면서 그들이 그동안 맞춰온 조직력이 살아났다. 반대로 터키의 젊은 선수들은 한국 올대만큼 강한 단련을 아직 못한 듯 싶었다. 이 차이가 후반 압도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조직력이란게 어찌보면 사실 별거 아니다. 선수들이 자기 위치와 자기 역할을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충 이런 상황에선 내가 어디를 지키고, 내가 지금 공격을 하러 올라가야 하는지 뒤에서 지키고 서 있어야 하는지, 공을 가진 상대를 압박해야 하는지 길을 막아야 하는지.. 말로 설명해 주는 것은 쉽지만 실제 선수가 경기중에 계속 습관적으로 옳은 위치로 이동하게끔 만드는 것이야 말로 감독의 조련 능력인 것이다. 올대 선수들의 경우에는 많은 훈련과 올림픽 예선전을 거치면서 그 것을 익혀두었다. 감독도 없는 A 팀은. 글쎄.

외국팀과 이야기를 할때 개인기의 차이를 이야기들 하지만, 나는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차이가 있다. 중요한 순간에 트래핑 한번, 턴 한번이 한 골과 바로 연결이 된다. 그렇지만 그건 맨 마지막 단계에 가서 문제이다. 오히려 그런 개인기를 가질만한 자질들은 있어 보인다.

그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경기를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다. 습관적인 패스, 항상하던 방향으로의 공격전환, 마약과도 같은 얼리 크로스.. 이를테면 상대가 압박이 들어올때 환상적인 개인기로 그 사이를 뚫고 나가는 선수들도 항상 그렇게 하는 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쉬운 방향에서 커버해주는 자신의 동료들을 이용한 패스 플레이를 한다. 그러다보니 개인기를 사용하기도 쉬워지는 것이다. 슬램덩크식으로 이야기하면 서태웅과 윤대협의 차이라고나 할까.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가대표에서 동네축구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가 축구라는 운동의 진짜 재미를 아직 느끼고 있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골을넣기까지의 과정, 그것이 진짜 축구다. 상대가 거칠게 나오고 강하게 막아서는 틈을 찾아서 어떻게 하면 상대를 속이고 헛점을 찌를 수 있을까. 그것은 드리블 돌파 일수도 있고, 상대를 따돌리는 스루패스 일수도 있고, 크로싱에 이은 헤딩일수 도 있다. 이번엔 어떤 것을 어떻게 해볼까를 팀 전원이 공감하고 만들어 나가며축구의 재미를 느끼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선수에 대한 평가. 이을용-김남일에 대해 덧붙이자면, 이을용이 오늘 많은 비난을 받을것 같지만 (을용타까지) 김남일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을용은 좀더 선수의 간격이 촘촘한 운영을 하는 팀 스타일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김남일은 공격을 전담할수 있는 활동양 많은 선수와 함께 뛰는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을용만 해도 후반에는 훨씬 나았다. 오버래핑해주는 윙백들, 그리고 패스를 주고 받을 김두현 등이 있어 주어서. (코너킥은 골이었다.)

송종국은 컨디션이 안좋아 보였다. 오랜만에 박진섭을 봐서 반가웠으나 그 뿐. 김동진은 후반전에 좋았으나 수비형 SB에서는 평균수준. 조병국의 세번 헤딩은 정말 시청자를 세번 죽이는 거였다. 수비도 잘했고 근데 생긴게 조병국이랑 하칸 수쿠르랑 닮지 않았나? 설기현도 박성화의 4-4-2 윙에서는 별로. 박성화의 4-4-2에서는 윙이 윙-미들-공격형 미드필더-FW를 전부 겸해야 하는게 설기현은 그렇게 활동량이 많지 못하다. 게다가 오늘 솔직히 활약이 없었다. 그의 기대치에 비한다면. 정경호는 요새 꾸준히 주전 출장하는데 국대 주전으로 보기엔 뭔가 미흡하다. 오늘 헤딩으로 김은중에게 밀어준 것이 최고의 플레이였다. 그다음 문전 대쉬가 늦었지만.

안정환이라는 계륵을 어떻게 삼킬 것인지. 그렇다고 안정환을 AMC 자리에 놓아봐도 뚜렷하게 멋진 플레이를 해주는건 아니다. 일단 빠르기와 활동양, 그리고 몸싸움의 문제 때문에. 역시 FW뿐인데, 지금처럼 풀타임 출장보다는 변화를 위해 투입을 하는 역할이 더 낫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김은중.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선수다. 내가 이 선수의 움직임을 또다시 응원하고 있다니. 저녀석이 저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저 헤딩경합에서 이길 확률은 몇 퍼센트정도 될찌, 저기서 어느 방향으로 칠지, 슈팅은 어떤 식으로 차려 할거고 빗나갈때는 어떻게 빗나갈껀지. 그의 움직임을 보고 그리워 하고 있자니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잊으려고 했는데 잊지 못하는. 이적한게 기타 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가슴시리지는 않으련만...

다음 경기와 베트남전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가는 것도 좋을것 같다. 그리고 A감독 선정은 정말 명운을 걸고 해주기 바란다. 단순히 여론몰이가 아니라 깊이 연구하고 우리나라 대표팀이 앞으로 무엇을 목표로 할것인지에 대한 비전 제시가 있어야 한다. 새로나게 하소서. 아멘.


by hongsup | 2004/06/02 22:07 | 창작과 비평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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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J at 2004/06/03 00:17
정말 안정환은 계륵이 딱 맞는 것 같다. 선발 출장보다는 후반 조커로 더 유용할 것 같다. 요즘 대전 알리송 후반 조커로 재미있는 것 처럼 ....

오늘 젊은 선수들 비교적 적은 경험이라고 한다면 참 잘 뛰어준것 같다. 올대 출신들이 활약이 참 눈에 띄더군.

벤치에 앉아 있던 박지성이 왜 그리 그리운지... 아마도 난 박지성의 왕팬이기 때문인가?? 지구력의 화신을 본받고 싶어서 인지...

조병국 무럭무럭 커다오 언젠가 니 머리에 공이 걸릴날이 오리라....
Commented by hongsup at 2004/06/03 09:31
지금도 병국이 머리에 공은 걸린다. 그 공이 골대에 안걸려서 그렇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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